벚꽃 새해 ..

  • 그간 사랑했던 여자들은 그는 여전히 사랑하고, 또 그런 식으로 영원히 사랑할 테지만 그건 ‘다시’ 사랑하는 일은 없으리라는 뜻이었다. 그건 한번 우려낸 국화차에 다시 뜨거운 물을 붓는 짓이나 마찬가지니까. 아무리 기다려봐야 처음의 차맛은 우러나지 않는다. 뜨거운 물은 새로 꺼낸 차에다만. 그게 인생의 모든 차를 맛있게 음미하는 방법이다.
  • 마찬가지였다. 봄날의 거리에서 재회하니 그런 식으로 정연은 예뻤다. 그에게 예뻤던 여자들은 여전히 예쁘고, 또 그런식으로 영원히 예쁘겠지만 ‘다시’ 예쁠 수는 없었다.
  • 홍곡지지, 사기, 진섭세가에 나오는 말
    •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진나라에 맞서 반란을 일으켜 왕이 되는 진섭이 머슴살이를 하던 젋은 시절, 미래의 부귀를 말하니 다른 머슴들이 그를 비웃었는데 그때 진섭이 한 말입니다. 제비나 참새 같은 작은 새가 기러기나 백조의 뜻을 알겠느냐는 뜻이죠.
  • 마지막으로 잔소리를 한마디하자면, 어쩌다 이런 구석까지 찾아왔대도 그게 둘이거 걸어온 길이라면 절대로 헛된 시간일 수 없는 것이라오.

깊은밤 기린의 말

  • 하지만 태호는 엄마의 말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말들은 참 외롭고 슬프다고 해야만 할 텐데, 그 말들도 엄마도 외롭거나 슬프지 않았다. 엄마는 태호가 자기 말을 알아들을 때까지, 그리고 설사 태호가 자기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해도 계속 중얼거릴 생각이었다. 병원과 집을 오가는 자동차 안에는 엄마가 중얼거리는 단어와 문장이 가득했다.
  • 이번에는 태호의 작은 두 귀가 그 말을 듣는 것 같았다. 그러자 그 말들이 갑자기 외롭고 슬프게 들려 엄마는 말을 다 끝맺지 못했다.
  • 가족의 역사책 : 이라..
  •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닐지니”
단 하나의 여름은 가고
이제 세상에 나온 지 사흘 째의 가을,

바람개비의 푸른 원 안에 든 하늘,
아이는 석류처럼 웃는다.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닐지니
보이는 것을 누가 더 바랄까*
* 로마서 8장 24절 인용

사월의 미, 칠월의 솔

  • “지금 이 사람들은 얘기하다가 파타고니아까지도 갈 수 있을 정도로 서로에게 푹 빠져쓴데, 플로리다 쯤이야….”
  • … 좋든 싫든 네가 처음으로 보게 되는 얼굴이 있을 것이야. 그게 누구냐면 바로 네 엄마란다. 그 엄마는 죽을 때 아마 제일 마지막으로 네 얼굴을 보게 될 거야. 인생은 그런 식으로 공평한 거란다. 네 엄마의 삶에 너무 많은 고통과 너무 많은 눈물만 없다면 말이야. 그러니까 죽는 순간에 마지막으로 보게 될 얼굴이 평생 사랑한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면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더라도 그건 불행하다고 할 수밖에 없어. 그러니 무조건 결혼을 하고, 그다음엔 아이를 낳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전부야.
  • 인생이 이렇게 짧다. 한 사람이 태어나 이 정도 와인을 다 못마시고 죽는다.
  • 그리고 마지막으로 폴이 죽음을 맞이했다. 이제 이모에게는 죽어가면서 봐야 할 얼굴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태어나자마자 거기에, 자기 삶에, 엄마의 얼굴이 없다는 걸 알게 된 아기처럼, 폴이 숨을 거뒀을 때, 이모는 처량하고 불쌍한, 말하자면 고아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 … 빗소리가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우리가 살림을 차린 사월에는 미 정도였는데, 점점 높아지더니 칠월이 되니까 솔 정도까지 올라가더라.

일기예보의 기법

  • 레테의 강, 망각의 심연
  • (안개..) 부유하는 상실의 덩어리
  • 우주를 비행한 우주견 라이카에 대한 이야기를 아빠한테 들은 적이 있거든. 어린 마음에 여전히 그 개가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돌고 있다고 생각했어. … 뭔가 보이면 손이라도 흔들어줄 생각으로.
  • “나는 너희 엄마를 사랑하는데, 너희 엄마는 너희를 사랑한단다.” 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닥터 강이 덧붙였다. “대개 그런 것이다.”

주쌩뚜디피니를 듣던 터널의 밤

  • ‘Je sais tout est fini’, 모든 게 끝났다는 걸 나는 안다.
  • 큰누나가 끝내 내게 들려주지 못한 엄마의 말은 이런 것이었다. 인생을 한 번만 더 살 수 있다면, 자기도 그 언니처럼, 마치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사람처럼, 불어 노래도 부르고, 대학교 공부도 하고, 여러 번 연애도 하고, 멀리 외국도 마음껏 여행하고 싶다는 말. 그 말
  • 하지만 그럼에도 큰누나는 두 사람의 삶이 서로 겹친다는 것을 알게 됐단다. 그래서 엄마가 다시 한번 인생을 살 수 있다면, 그건 우리도 또 한번의 삶을 사는게 된다는 사실을. 다시 말하면, 우리가 또 한번의 삶을 살 수 있다면 엄마 역시 다시 한번 인생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그렇게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 프랑스 사람들이 들어도 전혀 무슨 소리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겠지만, 이제 나는 분명히 그 뜻을 나는, 그러니까 ‘모든 게 끝났다는 걸 안다, 사랑은 떠나갔으니까. 한번만 더 둘이서 사랑할 수 없을까’라는 내용의 노래를. 터널을 완전히 빠져나오면 나도 주쌩뚜디피니, 하지만 모든 게 거기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도 안다고 생각했다. 아니, 노래했다.

  • 매일 같은장소에서, 옛날 옷을 입으며 사진을 찍는 …. 장면들